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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조선 전기와 후기 특징

Hi, 2016. 8. 30. 00:30

1. 조선의 정치제도와 그 정책 결정, 수행 과정 및 이에 나타난 운용상의 특징이 무엇인지 설명하시오. 


조선의 정치는 고려 말 제도를 기초로 하여 재구성한 것으로 태종 그리고 정종 때 대개 편을 거쳐 세조, 성종 때 경국대전의 완성과 함께 고정되었다. 


조선시대의 정치의 특징은 고려보다 관료적이며 중앙집권적입니다. 유교적 봉건적 지배체제로 모든 관리를 문반인 동반 그리고 무반인 서반으로 나눈 양반 제도를 이루었다. 


▣ 중앙 정치 제도 


의정부 : 조선 시대의 중앙 정치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6조와 의정부이다. 

의정부는 영의정, 좌, 우의정의 3정승을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나라의 중요 정책에 대하여는 제일 먼저 의정부의 동의를 거치도록 하였다. 


의정부는 고려의 도평의사사에서 시작된 것으로 1400년에 도평의사사가 의정부로 개편되었습니다. 의정부는 영, 좌, 우의정의 합좌 기관으로 3정승은 나라의 정사를 논의한 뒤, 그 합의를 통해 국왕에게 제출하고, 왕의 결재는 의정부를 거쳐 해당 관서에 전달되었다.


6조 : 의정부 아래의 행정 실무를 맡은 기관으로 이부, 예부, 호부, 병부, 형부, 공부가 있습니다. 그 장관을 판서라 칭하였습니다. 


▣ 특별관청 


3사 : 홍문관, 사헌부, 사간원을 3사라고 합니다. 홍문관은 국왕의 자문을 담당하였고, 사헌부는 관리들의 비행을 감찰하고 풍속을 단속하는 기관이며, 사간원은 국왕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국왕에게 간쟁하는 일을 합니다. 


승정원 : 국왕 비서 기관이므로 왕명의 출납을 맡았다. 

의금부 : 국왕 직속 사법 기관의 역할을 하였으며, 중대한 죄인을 재판하였다. 

춘추관 : 나라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담당하였습니다. 



경연제도 : 조선시대에는 특히 국왕이 대신들과 한자리에 모여 학술과 정책 문제 등에 대하여 토론을 하였는데 이를 경연제도라 한다.





1. 15세기와 16세기 사회의 전반적 특징을 훈구파와 사림파의 성격과 관련하여 설명하시오. 



고려 말 성리학으로 무장한 새로운 학자적 관료세력인 사대부 세력은 권문세족을 몰아내고 시대의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들의 사상적 기반이 된 성리학은 이들 신진사대부 세력을 두 개의 파로 갈라놓게 되는데, 한 무리는 성리학의 본래 정신에 부합하는 세력으로 이들은 대의명분과 의리를 강조하였고. 다른 한 파는 성리학을 통해 부패한 사회 기강을 새롭게 바꾸려고 하였습니다. 전자 역시 성리학에 입각하여 고려 왕조에 대한 개혁을 추진했으나, 그것은 고려왕조 존속을 조건으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후자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논리로 고려왕조를 부정하고 역성혁명을 시도하게 되고. 전자를 온건파 사대부, 후자를 혁명파 사대부라 합니다. 

첫 번째, 정치적인 면에서 훈구파는 중앙집권과 부국강병을 추구하였습니다. 조선왕조를 개창한 강경파 사대부들은 새롭게 건국된 조선을 부국강병 아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 중앙집권화 정책을 추진하였고. 따라서 지방을 8도로 나누고, 각 지방에 지방관을 모두 파견하고, 종래의 특수 행정구역이었던 향, 소, 부곡을 철폐하여 일반행정구역에 편입시키게 됩니다. 또한 일반 백성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서 호적 제도, 호패 제도, 오가작통법 등의 제도를 실시합니다. 

두 번째, 경제면에서 고려 말에 실시한 과전법은 권문세족이 불법적으로 소유한 토지를 압수하여 신진사대부와 농민층에게 돌려줌으로써 신진사대부의 경제적 기반 마련과 일반 농민에 대한 지지 획득이라는 두 가지 효과를 누리는 효과를 띱니다. 과전법은 전‧현직 관리에게 지급된 토지인데, 시간이 흐를수록 신진 관료에게 지급할 토지가 부족해지는 현상을 초래하는데. 이에 세조 때 현직 관리에게만 토지를 지급토록 하는 직전법을 실시합니다. 이 직전법의 실시는 양반들의 토지 소유 욕구를 부추겨서 토지의 집중 현상을 가져오며. 직전법의 실시로 관리들은 현직에 있는 동안에 자기 몫을 챙기기 위해서 농민을 과도하게 수탈하는 현상이 벌어져 자영농민들이 여기에 견디지 못하고 토지를 이탈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에 정부는 자영농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국가에서 직접 수조권을 행사하는 관수 관급 제로 전환하였고, 뒤에는 국가에서 관리에게 호봉에 따라 녹봉을 지급하게 된다. 

조선 전기의 경제정책을 한마디로 중농억상 정책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국가에서는 철저하게 상공업은 억제하였는데 수공업은 관영 수공업이 중심이 되었고, 상업활동 또한 시전과 보부상 등 국가에서 인정하는 상인만이 활동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상공업 활동이 미약하여 교환 수단으로 이 주로 곡식과 포가 사용되었고, 화폐의 사용은 부진하였다. 

세 번째, 사상적인 면에서 이 시기의 중심 사상은 성리학인데, 성리학은 유학과 마찬가지로 중국 중심의 사상입니다. 그러나 15세기 지배세력인 훈구파들은 성리학이란 학문에 심취하여 중국에 사대적이 사상으로 빠지기보다는 성리학을 이용하여 부패한 고려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였습니다. 

16세기의 정치변동은 사림이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여 주도권을 장악해가는 과정 곧 사림 정치의 형성 과정이었습니다. 조선은 이들 사림세력이 등장하면서 성리학적 지배이념이 본격적으로 백성들에게 영향이 미치게 되었으며 이들에 의한 정치를 사림 정치라 합니다. 

사림은 경제적으로는 중소 지주적인 기반을 가지는 부류가 다수로써 중앙집권 체제보다는 향촌 자치를 내세웠고 학술과 언론을 바탕으로 하는 왕도정치를 추구하였고, 이들은 왕권이 강화되고 제도의 정비가 진척되던 15세기에는 그들의 뜻을 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성종이 훈척 세력의 독점을 견제하기 위하여 새로운 인물을 요구하면서 중앙 정계에 진출하게 되었고. 사림의 등장은 이미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훈구 세력과의 사이에서 사화가 발생되었으며 더 나아가 붕당이라는 정치집단을 형성하게 됩니다. 


1. 조선 후기 부세제도 운영에 나타난 근대적 요소를 설명하시오. 


조선 후기로 가는 과정에서의 가장 근대적 요소라 함은 조세화로 볼 수 있습니다. 영정법과 더불어 대동법이 시행되면서 그동안 지방에서 각 지역의 특산물을 현물로 납부하던 것에서 토지 결수에 따라 1결당 12두씩 내야 했습니다. 토지 결수에 따라라 함은 즉 토지가 없는 자는 공납의 부담에서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현물로 납부하던 것을 이제는 쌀로 내게 되었습니다. 또한 균역법이 실시되면서 2포씩 내던 군포를 1포씩 내게 되었고 그 부족분을 채우기 위한 방편들 중 걸작이라고 하여 1결당 미곡 2두씩 걷게 되었습니다. 

이제 공납이 조세화되었고, 군역 또한 부분적으로 조세화되는 과정이 나타납니다. 징수 방식이 변화함에 따라 수취의 금납 화가 진전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항이 근대적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1. 조선 후기 산업분야에 나타난 근대적 요소를 추출해보시오. 


조선 후기 산업분야는 대동법의 영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대동법이 시행되면서 그동안 각지의 산물, 물품 즉 현물로 걷어지던 것들이 이제는 쌀로 걷어짐에 따라 

(상공이 폐지되었고 별공, 진상은 존재) 국가는 각 물품들을 공인이라는 상인을 통해서 구하게 됩니다. 


국가로부터 돈을 받은 공인은 물품을 대신 사서 국가에 납부했는데 이 공인들이 각 지방의 장시에 가서 물건을 사게 됩니다. 근데 이 공인들이 멀리 지방까지 내려가는데 쌀이나 베, 등을 가지고 가는 것보다 돈을 가지고 가는 게 편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국가에서 인증받은 공인들이 돈을 주고 물건을 삼에 따라 장시에서도 돈의 유통이 활발해집니다. 


또한 장시에서 구할 수 없는 물품들은 공장(장인)을 통해서 만들게 되는데, 공인이 공장들에게 미리 돈을 지급해주면 공장은 그 돈으로 물건을 만들고 공인에게 물품을 지급합니다. 그리고 공장들은 국가에 그만큼의 세금(포)만 지급하면 되는 것이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상업자본이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공장들이 물건을 만들던 곳 주변에는 "점"이라 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렸고, 부역 제의 붕괴에 따라 백성들이 낸 세금을 운반하는 과정에서 이제는 배를 갖고 있는 상인들이 세곡을 운반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 세곡들을 운반하려 모아놓은 포구 근처에 상인, 객주, 여각 등 많은 세력이 몰리게 됩니다. 즉 장시, 점, 포구 등 상업자본이 성장하는 곳에 사람들이 몰리게 되었고 이러한 곳들이 즉 "도시"의 형태를 띠어가기 시작했습니다.